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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泉, 인생글,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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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 고군(雇軍).

noun
1. pieceworker

품삯을 받고 임시로 일하는 사람



2.   누가 선한 목자인가?

주님께서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개의 키워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1)  삯꾼

첫 번째 키워드는 선한 목자와 반대 개념인 ‘삯꾼’이라는 단어입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2-13절)

조금 전에 언급한 것처럼, 대체적으로 성도들은 목회자를 목자로 생각하면서, 그들을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제가 목사로서 이런 내용을 가지고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좀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성경대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로 구분할 때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기준은 교회와 교인들을 향한 관심일 것입니다. 교인들과 언제나 함께 있어주고, 교인들이 뭔가를 필요로 할 때 함께 기도해주고, 교회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교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목사를 가리켜 선한 목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면, 교인들과 함께 하지 않고, 교인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고, 돈과 명예를 좋아해서 총회 같은 데에 자주 가고, 교회보다는 자기 가정의 일이나 교회 밖의 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목사를 가리켜 삯꾼 목자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렇게 구분하는 기준이 아주 틀리지는 않지만 성경에서 말씀하는 정확한 기준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기준으로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를 구분하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정확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선한 목자는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주는 목자를 말합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4-16절)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마음을 잡아주는 목자가 선한 목자입니다.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14)이라고 하신 말씀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함께 있어 주거나 양의 사정을 잘 아는 정도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15)라고 하신 것을 보십시오. 단순히 시간적으로 함께 있는 것이나 양의 사정을 잘 아는 정도를 뜻하는 게 아닙니다. 완벽한 하나 됨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가 됨을 의미합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무엇을 합니까? 서로를 지켜줍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서로 지켜주며 도와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반대로 삯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12). ‘삯꾼 목자’라고 하지만 삯꾼은 사실 목자도 아닙니다. 삯꾼은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지 못하도록 하는 자를 말합니다. 이리에게 물려가도록 그냥 놔두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붙어 있던 마음이 “이리”로 표현된 세상의 가치관에 공격당하고 끌려가도 그냥 방치하고 놓아두는 사람이 삯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삯꾼도 양들과 함께 하면서 양들을 칩니다. 양들의 사정도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런데 선한 목자와의 차이점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나 몰라라 하며 양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들은 물려가고 흩어지게 됩니다(12). 그럼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볼 때 왜 달아납니까?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13절, 새)

삯꾼이 도망가는 이유는 “양들을 생각하지(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함께 있는 시간과 상관이 없습니다. 사정을 잘 아는 것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마음이 세상에 빼앗기도록 놔두는 목자는 아무리 양들과 함께 있고 양들의 사정을 알고 있어도 결코 선한 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삯꾼일 뿐입니다.

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합니까? 왜 예배를 드립니까? 왜 기도를 합니까? 왜 큐티를 합니까? 건강하기 위함입니까? 성공하기 위해서입니까? 자녀가 좋은 학교에 가고 잘되기 위해서 기도합니까? 사업이 잘 풀리기 위해 기도합니까?

우리가 하루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 읽고 봉사한다 해도, 우리의 관심이 온통 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뿐이라면, 그것은 이리에게 물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만 신앙생활을 하도록 지도한다면, 그것은 이리와 같은 세상에 물려가도록 방치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사람이 바로 삯꾼인 것입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기준이 아닙니다. 사정을 조금 더 아는 것의 문제가 아닙니다. 양의 마음이 하나님께 붙어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렇게 도움으로써 마음을 지키도록 해주는 것이 선한 목자입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을 때 우리는 생명을 얻으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켜준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https://www.kpccoh.org/wed/10265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 - 선한 목자와 삯꾼을 나누는 기준 (요 10:11-18) -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교

2017년 1월 18일 수요예배 ✦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교훈 6 ✦ “선한 목자와 삯꾼을 나누는 기준” (요한복음 10장 11~18절) 1.   주님께서 지키고 싶어 하시는 것 성경에서 목자를 말할 때는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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