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마왕, 10주기 추모 1
#신해철 2집
#마왕
난 잃어버린 나를 만나고 싶어
모두 잠든 후에
나에게 편지를 쓰네
내 마음 깊이 초라한 모습으로
힘없이 서 있는
나를 안아주고 싶어
난 약해 질때마다
나에게 말을하지
넌 아직도 너의 길을
두려워하고 있니
나의 대답은 이젠 아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뿐 오
이제 나의 친구들은
더이상 우리가 사랑했던
동화 속의 주인공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호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엔 더이상
도움될 것이 없다 말한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액수가
모든 가치의 척도인가
돈 큰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위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나만 혼자 뒤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 걸까
가끔씩은 불안한 맘도
없진 않지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친구여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는 데
때로는 내 마음을
남에겐 감춰왔지
난 슬플 땐 그냥 맘껏
소리내 울고싶어
나는 조금도 강하지 않아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만 가네
나의 마음도 조급해지지만
우리가 찾는 소중함들은
항상 변하지 않아
가까운 곳에서 우릴 기다릴 뿐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
# 신해철(申海澈[2], 1968년 5월 6일~2014년 10월 27일)은 대한민국의 가수, 작곡가, 작사가, 음악, 음반 프로듀서, 라디오 DJ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수'로 선정되었으며, 연예인이지만 유일하게 친노로 불리는 상징적인 인물이다.[3] 연예인의 범주를 넘어서 20세기 연예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정치연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위키백과
서울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부산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만 20세 시절이던 1988년, 무한궤도의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대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등장하였다. 당시 절대미남 외모로 유명했으며, 수상곡은 자작곡인 〈그대에게〉이다. 정식 데뷔는 무한궤도 1집 발표 때이며, 이후 솔로가수로서도 활동하였으나 주로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데뷔 이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여 음악성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발표한 대부분의 음악을 스스로 작사 · 작곡 · 편곡하였으며, 앨범 녹음시 악기를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추구한 주된 장르는 록이었지만, 테크노[주 2], 재즈[주 3][주 4], 국악[주 5], 클래식[주 6]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였다. 또한 가사에 있어서도 통상의 대중가요와는 달리 남녀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자아 · 존재 · 삶 · 가족 · 사회적 문제 등 세상의 다양한 것들을 노래했다. 한편 음향 및 녹음 엔지니어링, 작 · 편곡 컴퓨터프로그램 등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직접 관련 기술이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는데, 특히 미디 음악(컴퓨터 음악)분야에선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1세대 선구자이다. 이처럼 신해철은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이자 천재 뮤지션으로 평가받고 있다.
더불어, 뛰어난 언변으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떳떳하게 밝혔던 논객이자 사회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소셜테이너였고, 특유의 입담과 독특한 진행으로 밤시간대를 대표한 라디오 DJ였다.[주 7] 별명은 '마왕', '교주'였다. 2014년 10월 27일, 향년 4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데뷔 이전 (1968~1988)
신해철은 1968년 5월 6일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에서 약사 출신 기업가인 아버지[4]와 약사 출신 전업 주부인(추정) 어머니[5][주 8] 아래, 1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중동중학교 재학 시절 학급반장을 맡으며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였다. 보성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밴드 '각시탈'에서 활동을 하였고, 부활의 김태원에게 기타를 배웠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음악에 빠졌던 것인데,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앨범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아서 이틀간 학교를 안 가고 음악만 들었다."라고 회상한 적도 있다. 특히 1986년부터 KBS 제2FM에서 방송하고 있었던 심야 음악 프로그램인 〈전영혁의 음악세계〉에 푹 빠져 지냈는지라, 훗날 신해철의 아버지는 “서울대학교에 갈 수 있는 머리였는데 매일 밤마다 전영혁의 프로그램을 듣느라고 서강대학교에 갔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6] 실제로 서강대학교에 입학한 성적표를 보면 수학만 0점에 가까운 하위권 성적이었고 나머지 과목은 만점을 받았다.
서강대학교 철학과 2학년이던 1988년 8월에는 고교 시절 밴드 동료였던 이들이 만든 ‘아기천사’라는 밴드의 객원가수로 MBC 강변가요제에 출전했으나, TV로 전국에 생중계되는 결선을 목전에 앞둔 본선 3차[주 9]에서 고배를 마셨다[주 10].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데뷔, 무한궤도 활동 (1988~1989)
1988년, 신해철은 어린시절 친구들이었던 김재홍, 조형곤[주 11], 조현문, 조현찬과 밴드 무한궤도를 이루어 언더 그라운드에서 공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무한궤도는 밴드의 활로를 모색하는 시기를 맞이하였고, 한 멤버가 1988년 MBC 대학가요제 출전을 제의하여, 멤버들 간의 갑론을박을 거쳐 결국 출전을 결정하였다. 이후 신해철은 앞서 출전했던 같은 해에 열린 강변가요제에서의 수상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가요제의 특성에 관해 분석하여 전략을 짰고, 이는 결국 대상 수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수상곡은 신해철이 작사 · 작곡한 〈그대에게〉였는데, 이 곡은 철저히 가요제 수상을 위한 맞춤형 곡이었다. 신해철은 곡을 만들기 전에 '전주부터 화려하게 치고 들어가야 한다. 전진돌격대형으로 시작부터 돌격한다. 곡이 좀 특이해야 한다. 노래 자체는 단순하다. 8비트로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멜로디로 간다. (대학가요제) 현장 행사에서 가사가 전달될 리 없으니 쉬운 가사로 간다. 4분 동안 끊임없이 변한다. 지루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등의 전략을 세웠다고 한다. 이러한 치밀한 전략이 적중했던 것인지,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조용필은 전주만 듣고 대상감으로 직감했다고 한다. 신해철은 〈그대에게〉 탄생 과정에 대해, "당시 키보드로 곡을 만든다는 행위를 해보고 싶었다. 문방구에서 멜로디언을 사서, 멜로디언을 불면서 〈그대에게〉를 만들었다. 아버지한테 안 들키려고 밤에 이불 쓰고 멜로디언을 불면서 만들었다. 원래는 10분짜리 대곡을 만들려고 했는데 숨이 차서 4분짜리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7]
그로부터 약 한달 뒤인 1989년 1월, 신해철은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장윤정과 MBC AM(현재 표준FM)의 《우리는 하이틴》을 공동진행하였는데, 이것이 신해철의 기나긴 라디오 DJ 이력의 시작이다. 놀라운 것은 당시 그는 정식 데뷔한 가수도 아니었고, 그저 대학생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청소년들이 주로 듣는 심야 음악 방송조차 황인용 등 유명 중견 아나운서들이 맡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절 스물을 갓 넘긴 대학생 신해철의 발탁은 생각하기 어려운 파격이었다.
한편 무한궤도는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뒤, 멤버구성에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이 시기에, 1988년 강변가요제에 '실험실'이라는 팀으로 참가했었던 정석원이 신해철의 제의로 무한궤도에 영입되었다. 6인조가 된 무한궤도는 1989년 6월 1집을 내놓으며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때〉를 히트시켰다. 그러나 멤버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몇몇 멤버들이 탈퇴하게 되었고, 오래 활동하지 못하고 결국 해체됐다. 또한 신해철은 같은 해 10월 16일 대마초 흡연으로 인해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되었다.[8] 그 후 10월 28일에 구속적부심에서 재판부는 초범인 데다가, 대학생신분이며,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고, 친구들이 산 대마초를 두 모금만 피워 가담정도가 경미한 점을 감안해 신해철을 석방시켰다.[9]
....
2015년 5월 신해철의 유족은 해당 의사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다[64]. 그리고 2015년 10월 이 사건에 대한 첫 형사재판이 열렸다.
2016년 11월 25일 서울중앙지법 1심에서 집도의 강씨에게 유죄(업무상과실치사 혐의 · 금고 10월에 집행유예 2년)가 선고 됐다. 재판부는 “강씨가 신해철의 복막염 증상을 미리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점이 인정된다”[65] 며 의사로 인해 고인이 사망하게 된 것이라 판단했다. 또 “의사직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가벼운 형을 내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 금고형을 선고하기로 한다”며 피고인이 의사직을 유지 하면 안된다는 취지의 판결임을 밝혔다.[66] 그러나 과실치사죄는 의료법 상 면허 취소 사유가 아니어서 피고인 강씨의 의사면허는 유지 될것이라는 견해도 있다.[67] 한편 유가족은 "한 사람의 자식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이며 가수였던 사람이 사망한 사건이다. 적은 형량에 부당함을 느낀다"라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68]
2018년 1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는 2심에서 징역1년을 선고하였다. 재판부는 "강씨가 집도한 복강경 수술의 경우 천공발생 여부를 인지할 확률이 낮아 당시 신씨에 대해 사후 추적관리의 필요성이 컸다. 그런데도 퇴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신씨는 강씨의 지시에 따라 퇴원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69]. 또한 2심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1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던 '업무상 비밀누설 및 의료법 위반'이 유죄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환자가 사망했더라도 그의 의료 기록을 누설한 것은 의료법상 정보누설 금지 조항에 위배된다. 피고인은 유족들에게 사과하기 앞서 유족들의 동의도 받기 전에 피해자의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노출했다"고 지적했다[70]. 이로써 강씨는 1월 30일 법정구속되었다.[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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