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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기, 언어, Ghost Festival, 百中, 百衆, 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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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날, 백중(百中 또는 百衆)은 백종(百種), 망혼일(亡魂日), 중원(中元)이라고도 하며, 음력 7월 15일이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음력 7월이 귀신의 달인 귀월에 해당하며 중국 남부지방에서는 음력 7월 14일이 백중이다.


이 무렵에 갖가지 과일과 채소가 많아 100가지 곡식의 씨앗을 갖추어 놓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또한 돌아가신 조상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음식·과일·술을 차려놓고 천신(薦新)을 하였으므로 “망혼일”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승려들은 이날 각 사찰에서 재(齋)를 올리며 농촌에서는 백중날을 전후하여 백중장(百中場)이라고 하는 장이 섰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날 하루를 쉬게 하였으며, 지방에 따라서는 차례를 지내고 산소를 찾아 벌초와 성묘를 한다. 백중날은 대부분 일손을 놓고 하루 쉬지만 제주도 지방에서는 오히려 바다에 나가 일을 많이 한다. 백중날에 살찐 해산물이 많이 잡힌다고 믿기 때문으로, 이날 잡힌 해산물을 가지고 한라산에 올라가 산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지옥과 아귀보를 받은 중생을 구제하는 우란분회(盂蘭盆會, 우라본)라는 법회를 연다.

백중은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 고려 시대에는 일반인까지 참석하여 우란분회를 열었으나, 조선 시대 이후로는 사찰에서만 행해져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그 풍습이 많이 소멸되었다. 반면 중국과 일본 그리고 베트남에서는 아직도 비교적 백중날을 성대하게 지내는 관습이 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음력을 쓰지 않아 오늘날에는 양력 8월 15일 경, 오본과 결합하여 제사를 지내고 절에 참배하는 사람이 많다. 중국에서는 악귀를 쫓는 제사를 크게 지내는데, 추석 한 달 전의 행사로 유명하며, 이는 서양에까지 소개되어 영어권에서도 “Ghost Festival” 등의 이름으로 차이나타운 등지에서 행해져 상당히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위키백과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종·중원·망혼일·우란분절 등으로 불리는 세시풍속이다. 이 무렵에 백가지 곡식 종자를 갖추어 놓았다 하여 백종이라 했고, 상원(1월 15일)과 하원(10월 15일) 그리고 이날(중원)을 합하여 삼원이라는 초제를 지내는 도가의 세시풍속에서 중원이라는 명칭이 유래했다. 이날 불가에서 우란분회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어서 우란분재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 이후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공휴일인 양력 8월 15일에 마을 단위로 농사의 수고를 위로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백중 행사를 하는 새로운 세시풍속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중원’은 도가(道家)의 말로, 도교에서는 천상(天上)의 선관(仙官)이 일년에 세 번 인간의 선악을 살핀다고 하는데 그때를 ‘원(元)’이라 한다.

1월 15일을 상원(上元),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고 하며 7월 15일의 중원과 함께 삼원(三元)이라 하여 초제(醮祭)를 지내는 세시풍속이 있었다. ‘망혼일’이라 하는 까닭은 이날 망친(亡親)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 · 음식 · 과일을 차려놓고 천신(薦新)을 하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우란분절’은 불교에서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지내는 날을 중국에서 명절화한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불제자 목련(目蓮)이 그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7월 15일에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했다는 고사에 따라 우란분회(盂蘭盆會)를 열어 공양을 하는 풍속이 있다. 『목련경(目連經)』과 『우란분경』에 보면, 부처는 지금 살아 있는 부모나 7대의 죽은 부모를 위하여 자자(自咨)주1를 끝내고 청정해진 스님들에게 밥 등의 음식과 5가지 과일, 향촉과 의복으로 공양하라고 하였다. 이는 신통력으로 자기 어머니가 아귀(餓鬼) 지옥에서 고통 받는 모습을 본 목건련(目犍連)이 어머니의 구원을 부처에게 청원하여 비롯된 것이다.

이후 불가에서는 자자를 끝내는 날에 우란분재를 올리는 것이 전통이 되었는데, 중국에서는 양(梁)나라 무제 때 동태사(東泰寺)에서 처음으로 우란분재를 지냈다고 하며, 그 후 당나라 초기에 크게 성하다가 점차 민간풍습으로 축소되었다. 오늘날 중국의 우란분절은 도교 행사와 습합된 것이다.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나 고려 때에는 일반인까지 참여했으나 조선시대 이후로 사찰에서만 행해지고 민간에서는 소멸되었다.-한국민속문화대백과사전


백중(百中)은 망자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제를 올리고, ‘세 벌 김매기’가 끝난 후 머슴을 쉬게 하는 풍속이다. 이를 백중(百衆), 백종(百種), 백종절(百種節), 중원일(中元日), 망혼일(亡魂日) 등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음식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백중놀이를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던 농민의 명절로서 농민들의 여름철 축제로 굳건하게 자리를 잡았다. 부산 지역의 민간에서는 백중이란 말로 통일되어 있다.

백중은 원래 불가에서 부처의 탄생, 출가, 성도, 열반일 등을 합한 4대 명절에 우란분재(盂蘭盆齋)를 더하여 5대 명절로 한다. 우란분(盂蘭盆)은 범어의 ‘Ullamana’를 음사(音寫)한 오람파라(烏籃婆拏)가 와전된 것이다.

「우란분경(盂蘭盆經)」에 의하면 목건련 존자가 천안통으로 지옥을 보니 그곳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고통 받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부처님께 구제 방법을 물어서 어머니를 천도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된 의례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효행 사상과 관련되어 「우란분경」도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백중에 관한 기록들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김육(金堉)[1580~1658]의 『송도지(松都志)』에 7월 15일을 백종이라 부르는데, 남녀가 주식(酒食)을 차려 놓고 삼혼(三魂)[사람 몸 가운데에 있는 3가지 정혼(精魂)으로 태광(台光)·상령(爽靈)·유정(幽靜) 등을 일컬음]을 부르며 우란분재의 고풍(古風)이라 하였다.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는 ‘백종(百種)·백중(白中)’을 병기하였다. 『규합총서(閨閤叢書)』·『이운지(怡雲志)』·『용재총화(慵齋叢話)』에는 ‘백종(百種)’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7월 15일은 속칭 백종이라 부르며, 백종에는 중들이 100가지의 화과(花菓)를 갖추어서 우란분을 설치하고 불공한다고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백종절이라고 하여, 중원일에 100가지 꽃과 과일을 부처님께 공양하며 복을 빌었으므로 그날의 이름을 백종이라 붙였다고 하였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그대로 인용하여 백종일이라 불렀다.

20세기 초 장지연(張志淵)[1864~1921]의 『조선 세시기(朝鮮歲時記)』에서는 속칭 백종절이라 하고 백중이라 하였다. 도시의 사녀(士女)가 주찬을 성대하게 차리고 산에 올라가 가무로 놀이를 하니, 그 풍속이 신라와 고려부터의 풍속이라고 하였다. 숭불(崇佛)로 인해 우란분공을 위하여 백종의 채소와 과일을 구비하였던 탓으로 백종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하고, 혹은 백곡지종(百穀之種)에서 나왔다고는 하나 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백중에는 민간에서 망혼제(亡魂祭)를 지내고, 절에서는 스님들이 석 달 동안의 하안거(夏安居)를 끝내는 날이기도 하다. 즉 우란분재와 백중은 조상 영혼의 천도(遷度), 참회와 중생 제도, 나아가서 일꾼들이 즐기는 농촌 축제의 날이 된다.

백중은 한 마디로 먹고 마시고 놀면서 하루를 보내는 날이다. 백중놀이는 ‘두레 먹기’에서 두드러진다. 백중에 열리는 두레 먹기야말로 두레 일꾼들이 모처럼 노동의 피로를 풀어내는 축제였다. 백중놀이는 지역에 따라 명칭이 다소 상이하게 나타난다. 호미걸이, 호미씻이, 술멕이, 풋굿, 질먹기, 진서턱[진세턱] 등이 대표적이다. 여름철 우물고사도 중요한 행사였는데 지역에 따라서 백중과 칠석에 혼재되어 나타나므로 칠석 놀이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백중날에 머슴들에게는 백중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장만해 주었으며, 모처럼의 휴가를 주어 백중장에서 즐기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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