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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기, 좋은글, 시, 序詩, 서시,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텐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 윤동주

#1941 연희전문 문과 졸업문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수록
#서시
윤동주가 1941년 11월 20일에 지은 시로, 그의 유고(遺稿)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 본인의 삶과 가치관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함과 동시에 개인적 회고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고뇌를 단순한 언어로 아름다운 자연에 비추어낸 윤동주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며 국문학을 대표하는 명시(名詩) 중 하나이다. 본래 제목이 없는 작품이라 적당히 '무제(無題)'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지만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첫부분을 장식한 만큼 서문(序文)격인 시였으므로 사람들이 서시(序詩)라고 칭했는데 그것이 오늘날에 이르러 제목으로 정착하였다.
기본적으로 시라는 게 개인마다 주관적 해석을 얼마든지 허용하는 분야이니[4] 후술된 내용들도 주관적인 해석 중 하나라는 것을 고려하며 보자.
일단 '별, 바람' 등의 자연물을 통해 지은이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별은 천상세계에 속하고 바람은 지상세계에 있는데 시 마지막에 가서 별이 바람에 스치는 것은 두 세계가 만나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바람'은 시인의 불안과 고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실제로 시인의 생애를 살펴보면 시국에 대한 불안, 가정에 대한 걱정, 하숙집을 옮겨야 하는 상황 등으로 괴로워했다.
'한 점 부끄럼 없기를 ~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의 결벽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도 윤동주는 결벽성이 있었다고 한다. 읽는 책에 좀처럼 줄을 치지 않았고 마음속에서 시를 다듬는 과정에서 시어 한 구절 때문에 몇 달씩 고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길'은 내가 걸어갈 길로, 인생, 운명, 미래의 소명 등을 떠올려 볼 수 있으며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구절을 통해 시인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성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윤동주는 생전 남을 헐뜯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윤동주가 크리스천이었다는 점과 연계해서 추정해 보면[5] 우선 '나에게 주어진 길'이라는 어구는 소명을 받은 자임을 드러내는 기독교적 메타포를 사용한 것 아니냔 해석도 있다.[6]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어구는 기독교의 가장 큰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7]를 인용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범인류애적인 부분은 상당수 종교 혹은 철학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긴 하지만. 실제로 후술되어 있듯 윤동주는 서시에 맹자 구절도 인용하고 있다.-나무위키
#시적허용
마지막 행의 '스치운다'는 시적 허용으로 당시 한글 맞춤법상으로는 '스친다'로 쓰는 것이 맞다함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구절은 한자 문화권의 오랜 관용구로 「맹자」를 인용한 것이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맹자
孟子曰 君子有三樂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
맹자께서 이르시길, "군자에겐 세 가지 기쁨이 있는데, 천하를 다스리는 것과는 상관없다.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기쁨이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움이 없고 사람을 굽어봐도 거리낌이 없는 것이 두 번째 기쁨이다. 천하의 영재들을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기쁨이다."
#尹東柱
#Yun Dongju
일제강점기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대한민국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한 문인이다. 사실상 김소월, 한용운 등과 함께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특히 그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서시는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데다 교과 과정에서도 배우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18]
오늘날 일반인들은 윤동주 하면 주로 시인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상술했듯 윤동주는 엄연히 독립운동가였다.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 그리고 삶의 고뇌에 대한 시를 많이 썼고 결국 체포된 와중에도 2010년에 세상에 공개된 윤동주 재판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그는 당시 악명 높았던 특고 앞에서도,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했다. 내성적인 이미지의 시인은 사라지고 형사 앞에서도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과 대책을 열정적으로 토로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선명히 다가온다. 그의 판결문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동 방침을 논의했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윤동주 본인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일본 유학으로 인해 민족의 걸어가야 하는 길과 다른 길을 걷는 것 아닌가 싶은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부끄러움[19]을 나타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정작 1930년대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에 많은 문인들이 절필 혹은 변절하는 세태 속에[20] 죽는 날까지 독립운동을 하다 죽었기 때문에 이육사와 더불어 민족시인으로 추앙받는다.-나무위키
#윤동주
#尹東柱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1945년 2월 16일)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본관은 파평(坡平), 아호는 해환(海煥)이다. 1917년 12월 30일 북간도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본적은 함경북도 청진시 포항동 76번지이다. 명동촌은 동간도의 척박한 땅이었지만 1899년 함경도 출신의 김약연, 김하규, 문병규 등이 140여 명의 식솔을 이끌고 동간도로 집단 이주한 후 윤동주의 조부인 윤하현 등이 합류하면서 '동방을 밝히는 곳(明東村)'이라는 뜻을 지닌 동간도 최대의 한인촌(韓人村)을 형성했다.-위키백과
윤동주의 시집은 사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 명동》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유고시집에 실려 있다. 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
《별을 사랑하는 아이들아》
《쉽게 씌어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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