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기, 2022 Cine docent, 트레티아코프 미술관과 러시아의 영혼, 아직도 정리중(~ing)
#시네도슨트
#Cine docent
#트레티아코프 미술관
#러시아의 영혼



#이콘
정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등의 동방 교회에서 주로 그리는 종교적인 상징물. 원래 이콘은 그림뿐 아니라 다른 예술품도 포함하지만 그림으로만 한정지어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단어의 기원은 중세 그리스어로 '그림', '도상'을 뜻하는 'εικόν' (이콘)에서 유래되었으며 영어에서 사용되는 아이콘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다.-위키백과

#Andrei Roublev
발판…
얼굴은 차마 밟지 못해서…
살아남은 예술…
#친구 박사
교수님 박사 논문 발표 시간 x 러시아 눈, 폭설, 발 묶임
트레체코프 미술관 방문 기회
국립미술관, 비가…새는 상황 그림?
#혼자, 그림에 말을 걸어봄
#눈물샘 터짐
이 그림이 그려진 목적?
르블레브는 왜?
사람들이 이 그림앞에서…
화가의 진심은 그 사람들이 위로를 받기를 원한것은 아니었나?!…
그 당시 러시아의 상황

자신과 그림이 공감을 가지지 못하면,감정이 생기지 않을 가능성…
#파리 루이비통 미술관
새로 생긴…
돛을 단 배 형상


여기에서
#모르조프 전시회
#Ivan Morozov
2.24일 러시아 전쟁으로 돌려주지 않으려는…시도, 의도
러시아가 예술을 아는가?!


#예카테리나 2세
예카테리나 2세(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а II, 1729년 5월 2일 - 1796년 11월 17일)는 러시아 제국의 황후이자 여제(재위: 1762년 - 1796년)다. 로마노프 왕조의 8번째 군주로, 본래는 프로이센 슈테틴 출신의 독일인이었다. 무능한 남편 표트르 3세를 대신해 섭정을 맡았으며, 1762년 남편 표트르 3세를 축출하고 차르(차리나)가 되었다.
1745년 러시아의 황태자이던 표트르 3세와 결혼했으나 지능이 부족하던 남편을 대신하여 섭정을 했다. 그러나 남편 표트르에 대한 평판이 나빠지자 1762년 정변을 일으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표트르 대제의 업적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러시아를 유럽의 정치무대와 문화생활에 완전히 편입시켰다. 내각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 제국의 행정과 법률제도를 개선했으며 크림 반도와 폴란드의 상당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영토를 넓혔다. 계몽주의 사상에 감명하여 볼테르 등과도 문학으로 교류하였고, 문학과 예술, 학예와 교육 등의 장려에 큰 관심을 쏟았고 각 지방관들로부터 직접 정무를 결재받음으로써 황권을 강화시켰다.
오스만 제국과 싸워 영토를 넓혔으며 폴란드 분할의 주역의 한사람이었다. 내각의 도움으로 러시아 제국의 행정과 법률 제도를 개혁했다. 본래 이름은 조피 프레데리케 아우구스테 폰 안할트체르프스트(독일어: Sophie Friederike Auguste von Anhalt-Zerbst)며, 개명한 이름은 예카테리나 알렉세예브나(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а Алексеевна)다. 루터교 세례명은 조피 프레데리케 아우구스테, 러시아 정교 세례명은 예카테리나[1], 이후 그녀는 러시아 정교회 세례명을 이름으로 사용했다. 행정 개혁과 내치, 문예 부흥 등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대여제(러시아어: Великая 빌리카야[*])로 불리기도 한다.
#겨울궁전
겨울 궁전(러시아어: Зимний дворец)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궁전으로서 제정 러시아 군주의 겨울을 위해 1754~1762년에 지어졌다.
로코코 양식을 표방한 궁전은 바르토로미오 라스트렐리(Bartolomeo Rastrelli)가 초안을 만들었으며 연둣빛의 색조를 띤다. 1,786개의 문과 1,945개의 창문이 있다. 예카테리나 1세가 첫 번째 주인이 되었다.
궁전은 현재 회화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한 박물관이기도 한 에르미타쥬 미술관(State Hermitage Museum)의 복합단지에 자리하고 있다. 박물관의 일부로서 1,057개의 홀과 방이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1826년 군사 갤러리가 문을 열어 332개의 국방계 인사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러시아의 2월 혁명 이후 겨울 궁전은 러시아 임시 정부 청사로도 쓰였다. 볼셰비키 정권의 겨울궁전 급습은 10월 혁명의 발단이 되기도 하였다.-위키백과
#상트페테르부르크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어: Санкт-Петербург 산크트페테르부르크[*]

듣기 (도움말·정보), 문화어: 싼크뜨-뻬쩨르부르그)는 러시아의 북서쪽에 있는 연방시이다. 네바강 하구에 있으며, 그 델타지대에 형성된 자연섬과 운하로 인해 생긴 수많은 섬 위에 세워진 도시이다. 발트해의 핀란드만에 접해 있다. "북유럽의 베네치아"라고도 불린다.
예전에는 페트로그라드(러시아어: Петроград, 문화어: 뻬뜨로그라드, 1914년 – 1924년)와 레닌그라드(러시아어: Ленинград, 1924년 – 1991년)로 불리기도 했다. 1924년 1월 21일 블라디미르 레닌이 죽자 1924년 1월 26일 그를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불리게 되었고, 1991년 9월 6일 다시 옛 이름을 되찾았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 표트르 대제가 1703년 만든 이 도시는 1712년 모스크바에서 천도하여 1918년까지 러시아 제국의 수도였다. 1918년 수도는 다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2010년 기준으로 5,000,000 명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수도 모스크바 다음으로,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모스크바에 이은 러시아의 대공업도시로 복잡한 정밀기계의 제조가 특색이다. 선박, 터빈, 발전기, 디젤 엔진, 트랙터, 공작기계, 계기류(計器類), 각종 장치의 제조공장이 있고, 화학공업(고무제품·과린산비료·화학합성 자재·염료·도료·향료), 섬유공업, 인쇄업 등도 성하다.
다수의 학술 연구기관, 미술관, 박물관 등이 있어 학술·문화의 중심지이기도 하다.[1] 도심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레닌그라드주와는 분리된 연방시를 이루고 있으나, 레닌그라드주의 행정 중심 도시로 되어 있다.
#애르미타주 미술관
에르미타시 박물관 또는 에르미타시 미술관(러시아어: Эрмитаж, 문화어: 에르미따쥬국립박물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술관으로, 정식명칭은 국립 에르미타시 박물관(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이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에 손꼽힌다.
미술관은 소에르미타시(러시아어: Малый Эрмитаж), 구에르미타시(러시아어: Старый Эрмитаж), 신에르미타시(러시아어: Новый Эрмитаж), 에르미타시 극장(러시아어: Эрмитажный театр), 겨울 궁전(러시아어: Зимний дворец)의 5개의 건물이 하나로 구성되어 있고, 120개의 계단이 있다. 현재 본관의 일부인 겨울궁전은 로마노프 왕조 시대의 황궁이다.
1764년에 예카테리나 2세가 미술품을 수집한 것이 에르미타시의 기원이다. 본래는 예카테리나 2세 전용의 미술관으로, 프랑스어로는 "은둔지"를 의미하는 "에르미타주"라고 하는 명칭도 거기에서 유래되었다. 초기에는 왕족과 귀족들의 수집품을 모았으나, 19세기말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었다-위키백과
'에르미타시'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은둔자를 뜻하는 eremites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름이 주어진 배경에는 에르미타시 초기, 굉장히 한정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었기에 왕과 귀족들간 '은둔자의 집' 이라 불렸던 이력이 있다.
고수다르스트벤니 에르미타시(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Эрмитаж)[3] 또는 에르미타주 박물관(Hermitage Museum)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궁전 광장(Дворцовая площадь)에 있는 박물관으로, 건물은 러시아 제국 시기의 겨울 궁전(Зимний дворец)을 사용하고 있다. 다른 현대적인 박물관 시설과 달리 겨울 궁전은 제정 러시아의 황제가 겨울에 거주할 목적으로 건설한 정궁(正宮)이었다. 따라서 소장하는 문화재뿐 아니라 건물과 수많은 전시실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구 러시아 황실과 소비에트 연방의 수집품과 전리품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전세계에서 끌어온 방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어 그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이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영국 런던의 영국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도 꼽히나 공식적인 분류는 아니다. 세계 3대 참조.-나무위키
#State Hermitage Museum
서구로 부터의 배움을 위해…
대량 구매

한시대를 통채로 가지고 온것 같은…
#푸쉬킨 미술관 옆 미술관
#빈센트 반고호, 붉은 포도밭
꼭 봐야 한다
빈센트 빌럼 반 고흐(네덜란드어: Vincent Willem van Gogh 핀선트 빌럼 판 호흐[*], 네덜란드어 발음: [ˈvɪnsɛnt ˈʋɪləɱ vɑŋ ˈɣɔx] , 1853년 3월 30일 ~ 1890년 7월 29일)는 네덜란드의 화가로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 전부(900여 점의 그림들과 1100여 점의 습작들)를 정신질환(측두엽 기능장애로 추측됨)을 앓고 자살하기 전의 단지 10년 동안에 만들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사후에 인정 받았다. 특히 1901년 3월 17일 파리에서 71점의 그림을 전시한 이후 명성을 얻었다.
반 고흐를 흔히 탈인상주의 화가로 분류하며, 또한 인상파, 야수파, 초기 추상화, 표현주의에 미친 영향이 지대하며 20세기 예술의 여러 다른 분야에 영감을 주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은 반 고흐의 작품과 그 동시대 작품을 전시한다. 네덜란드의 오테를로, 크뢸러-뮐러 박물관도 상당히 많은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소장했다.
반 고흐 그림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이다. 1987년 3월 30일에 반 고흐의 그림 '아이리스'가 뉴욕의 소더비즈에서 5390만 미국 달러라는 기록으로 팔렸다. 1990년 5월 15일에 그의 '가셰 박사의 초상'(첫째판)이 크리스티즈에서 8,250만 달러(한국돈으로 약 580억원)에 일본의 다이쇼와제지 명예회장 사이토 료에이(당시 74세)에게 팔림에 따라, 새로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당시 사이토가 지불한 8,250만 달러는 낙찰가 7,500만달러에 경매가 구전 10%가 가산된 금액이다.[1] 이후 '가셰 박사의 초상'은 미국의 수집가에게 4천 400만 달러에 다시 팔렸다.
#푸시킨 미술관
러시아 투어 같이, 조용히 다녀옴


#반고흐 붉은 포도밭



#빈센트 반고흐가 딱 하나 판 그림
작가 푸시킨 미술관과 다르다
#푸쉬킨 미술관, 다른 미술관




#푸시킨 미술관
19~20세기
푸시킨 국립 미술관(러시아어: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музей изобразительных искусств имени А. С. Пушкина)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미술관이다.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을 마주보고 있다.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이름을 따왔다. 음악 축제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 12월의 밤을 1981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바스티아 리파제?
시골에서의 사랑
인상파 의 모음
#끌로드 모네
#모네의 방


#모네
#르누아르
#애드가 드가
#고갱
색에 대한 새로운 시도
#세잔
#피카소
서양 미술관에서 보지 못했던 그림들,
추천
피카소
#마티스 도 최고



#마티스 파레트 기증

#러시아, 이 정도로 사람이 없다
#트레티아코프 미술관과 러시아의 영혼

#1905 피의 일요일
레닌과 사회주의
피의 일요일 사건(Кровавое воскресенье 크로바보예 보스크레세니에)은 1905년 1월 22일[1]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생한 유혈사태를 말한다. 러시아 제국 당시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노동자들의 탄원 집회였다. 니콜라이 2세에게 탄원을 하기 위해 겨울 궁전으로 평화적인 청원 행진을 하는 것을 정부 당국에서 동원한 근위군이 발포하여 다수의 사상자를 낸 사건이다.
불평등한 사회체제로 억눌린 러시아 민중들은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와 기독교 성화상 그리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은 청원서를 손에 들고 비폭력시위를 벌였는데, 당시 실권자 그리고리 라스푸틴이 유혈진압이라는 가혹한 탄압을 가한 사건이다. 죽은 사람만 500∼600명, 부상자 수천 명이나 된 대규모 유혈사태였다. 주동자는 사회개혁론자이자 러시아 정교회 사제인 게오르기 가폰 신부였다.
피의 일요일의 학살은 ‘1905년 혁명’을 활성화시킨 국면의 시작으로 간주되고 있다. 게다가 1905년 혁명의 시작은 라이오닐 코찬과 같은 사학자는 그의 저서 《1890-1918년 러시아 혁명》(Russia in Revolution 1890-1918)에서 피의 일요일 사건을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이끈 핵심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다.-위키백과
#모스코바 붉은 광장
붉은 광장(러시아어: Красная площадь 크라스나야 플로샤디[*])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광장이다. 크렘린 궁을 도시와 분리시키는 경계 역할을 하며, 모스크바의 주요 도로와 거리들이 대부분 이 광장에서 뻗어나가기 때문에 모스크바의 중심부로 여겨진다.
1989 동서독
러시아 겨울

#표트르 대제 동상
러시아가 고민하는 두 갈래 길에서…

푸시킨, 유럽을 배울려는 시도
트레체코프, 우리는 누구인가?
공국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유럽화 정책
예카테리나 2세 , 서구화
러시아의 크리스트교
정교
이콘

마리아는 우울한 얼굴,
예수, 앞으로의 일을 미리 알다


파벨 트레치아코프, 1883년
간송과 비슷
왜 작품을 모았는가?!
제 값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가 무슨 그림을 그리겠어?!?
카를 브률로프
러시아가 서구를 닮아가야 한다


24년 그린 그림

예술이 기억하는 러시아의 풍속
청혼

역사
종교
풍속화
잘못된 결혼

러시아의 왕정시대 불만

마지막 여정
아픈 엄마, 아이, 넉나간 아이, 아버지의 관
트로이카, 세마리가 끄는 마차

관청에서 지키는 우물
어는 물
계속 저어준다
모스크바의 삶

무슨 그림인가?!
역사 그림
타라카노바 공주
예카테리나
쥐, 물이 넘어들어오는 상황
지하감옥

이동파?
작은 도시들을 이동하며 전시를 하자
젊은 작가

이반 크람스코이
톨스토이

미지의 여인

트레체코프가 사기로 했다
톨스토이 절망
안나 카를리나을 톨스토이가 쓰게 된다


모스코바의 여름
아이들
러시아 만의 자연


이동파
스트랠치의 사형이 진행되던 아침 1881

사형 당하기 전의 얼굴

누구 편이냐?
역사를 기록할뿐~
판다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대가족 모로조바, 1887

웃는 사람, 우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의 종류



러시아 국민화가

역사화
이반 뇌제,
저지른 사건을 그림으로 그림
만삭 며느리, 몸의 열 때려죽임, 항의하러 온 아들도 때려죽임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잘 잡아낸다


아버지의 눈,
정신나간 눈, 제정신의 눈,
아버지의 공포
해석의 여지…
레핀이 사람들에게 각인


미술대학 졸업전에 그린 그림
유학 다녀와서 그린 그림
성직자


누구냐?
역사화





너 왜 왔냐?
아내의 눈빛 표정, 아이들 표정
레핀,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일리야 래핀
관찰하는 대상


미술대학의 교수
레핀이 그리는 러시아의 얼굴
20세기 이동파
트래치코프 구관
신관
혁명 이후 현대 예술과 아방가르드
칸딘스키
모네 그림보고 충격

따뜻한 추상


망하는 그림

아방가르드
러시아 예술, 추락
아르누보와 러시아, 미하일 부르벨
공주의 꿈

앉아 있는 데몬 씨리즈

영혼 조차도 다시 만날수 없을 것이다
그 시를 보고…절망
그림 앞으로 인도, 집중

작품실에서 작업시
악마의 눈, 모호함과 슬픔을 그렸으나…
전시회의 밝은 조명으로 사람을 격멸하는듯한 느낌으로…절망
전시회가…



와이프, 발레리나
눈에 대한 디테일…
그러나 자신의 삶…신경쇠약…정신병원
예술의 진일보…
작은 소수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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