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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품계

조선의 품계는 한반도의 왕조인 조선 신하들의 계급 품계를 작성한 문서이다. 조선시대에는 6품관 이상만 각 품계마다 상하계를 두어 총 18품 30계였다.-위키백과


아래 품계 가운데 당상관 정2품 이상은 대감이라고 부르고 정3품과 종2품은 영감이라고 부른다. 나머지는 모두 나리[1]라고 부른다.

정1품부터 종4품까지는 대부, 장군이라 칭하였다. 이들은 왕의 교지로 임면(任免)되고, 서경이 면제되었으며, 흔히 고급 관료로 구분되었다.

정5품부터 종9품까지는 사, 또는 랑, 위라 칭하였으며, 이들은 예조의 교첩으로 임면되고, 서경이 필요하였으며, 하급 관료로 구분되었다.

이와는 별도로 정1품부터 정3품 통정대부, 절충장군까지는 당상(堂上)에 있는 교의(交椅)에 앉을 수 있는 당상관이라 하였고, 정3품 통훈대부, 어모장군부터 종9품까지는 당하관이라 하였다.

당하관 중에서 매일 아침 국왕을 배알하던 약식(略式) 조회(朝會)인 상참(上參)에 참여할 수 있는 정3품부터 종6품까지는 참상관, 상참에 참여할 수 없는 정7품부터 종9품까지는 참하관이라 하였다. 참상관부터 수령직에 임명할 수 있었다.




#堂上官

#당상관
조선왕조의 정3품 상계 이상의 관료


당상관(堂上官)은 조선왕조의 정3품 상계(上階) 이상의 품계 또는 그 품계에 해당하는 벼슬에 오른 관원으로, 지금의 국장급 공무원 격이다. 조정에서 정사를 논의할 때 당(堂) 위에 올라 앉을 수 있는 관직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으며, 국가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정치적 책임을 갖는 고위 관직이었다. 정3품 품계는 상계(上階), 하계(下階)로 나눠져 있었으며, 상계 이상(정1품부터 정3품 상계까지)을 당상관, 하계 이하(정3품 하계부터 종9품까지)를 당하관(堂下官)이라 하였다. 문관 관직에 주어지는 문반(동반) 품계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무관 관직에 주어지는 무반(서반) 품계는 절충장군(折衝將軍)[1] 이상의 품계가 당상관에 해당한다.

당상관의 경우 조선 후기 기준으로 관복(冠服)의 흉배에 어떠한 분야이든 두 마리가 그려지게 되어 있다. 문관의 경우 학이 두 마리, 무관의 경우 호랑이가 두마리이다. 관복의 흉배에 한마리만 그려지는 당하관과 비교했을 때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했다.



#당하관
#堂下官

당하관(堂下官)은 조선왕조의 정3품 하계(下階) 이하의 품계를 보유한 관원을 가리킨다.[1] 조정에서 정사를 논의할 때 당(堂) 위에 올라 앉을 수 없는 관직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으며, 국가 정책의 집행 실무를 담당하는 관직에 해당하였다. 정3품 상계(上階) 이상의 품계에 오른 관원은 당상관 이라 하였다.

당하관의 경우 조선 후기 기준으로 관복(冠服)의 흉배는 대부분 1마리만 그려지게 되어 있다. 관복의 흉배뿐만 아니라 관복 색깔도 구분을 할 수 있는 방법이였다. 당상관은 붉은 관복을, 당하관은 파란 관복 또는 녹색 관복을 주로 입었다.

#당상관은 정책을 만들고, 당하관들이 실무를 하는 형태였다.



#품계석이란?
품계석은 정전을 기준으로 좌우 각각 12개가 세워져 총 24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정전에 가까울수록 높은 자리였다. 조선의 관직체계는 1~9품으로 구분되고, 각 품은 정품(正品)과 종품(從品)으로 나뉘어 총 18개 품이었다. 같은 품이라도 정품이 종품보다 높았다. 또 6품 이상은 정품, 종품별 상하로 나뉘어 총 18품 30계로 되어 있었다. 왕의 정면에서 좌측에 세워진 12개 품계석에는 문관(文官)들이 정렬하였고, 우측에 세워진 12개 품계석에는 무관(武官)들이 정렬하였다.

1품부터 3품까지는 정품(正品)과 종품(從品)이 구분되어 12개가 배치되어 있지만, 4품부터 9품까지는 구분 없이 정품만을 새긴 것으로 12개가 배치되어 있다. 3품을 기준으로 품계석의 나열이 달라지는 건 당상관과 당하관을 구분하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 당상관은 국정을 입안, 집행하는 고위 관료를 의미하며, 문관은 정3품 통정대부(通政大夫), 무관은 정3품 절충장군(折衝將軍) 이상이었다. 정3품까지인 당상관과 그 이하인 당하관을 구분하고 정4품 이하는 정품과 종품의 구분을 두지 않은 것이다. 품계석의 이 같은 배치구조는 장서각에 소장된 ‘정아조회지도(正衙朝會之圖, 1778)’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자에 수록된 배치도와 그 설명을 통해 관리들이 1품부터 3품까지는 정품과 종품으로 나누어 섰지만, 4품부터 9품까지는 구분 없이 같이 서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국가유산청




#품계석의 의미
품계석은 조선시대 관리들이 정전에서 벌어지는 각종 국가 행사에 자신의 품계에 해당하는 품계석 옆에 질서 있게 정렬할 수 있게 하여 행사 때 벌어질 수 있는 혼란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었다. 또한 관리들의 위계질서 확립과 동시에 왕과 신하들의 질서를 다시 세우려 한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선시대 관료 체계와 그 당시 관료 사회의 모습을 현장에서 시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품계석의 역사와 의미를 이해하면서 궁궐을 보게 되면 더욱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글·사진. 이충선(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학예연구사)




#조선시대의 관직과 현시대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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